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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우외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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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우 대항해시대로 회귀하다 ~~~~







눈을 떴는데 냄새가 달랐다.


곰팡내도 아니고, 에어컨 필터 냄새도 아니고. 짠내. 생선 비린내. 그리고 나무가 썩어가는 듯한, 축축하고 무거운 냄새.


'뭐야.'


강현우는 눈을 비볐다. 손이 거칠었다. 자기 손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자기 손이 맞는데 — 마우스를 잡던 손이 아니었다.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손톱 밑에 때가 끼어 있었다.


일어나 앉았다. 천장이 낮았다. 나무 천장. 나무 벽. 나무 바닥. 전부 나무였다. 침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널빤지 위에 거친 천 한 장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자기가 누워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창문이 있었다. 작고 네모난 창문. 밖을 내다보는 순간, 강현우의 머리가 멈췄다.


항구였다.


돛대가 보였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크고 작은 배들이 빽빽하게 정박해 있었고, 부두에는 나무 상자를 나르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저 멀리 언덕 위에 성이 보였다. 붉은 지붕들이 언덕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리스본이었다.


강현우는 그 풍경을 알고 있었다. 모니터 너머로 수천 번은 봤으니까. 리스본 항구. 게임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보이는 화면. 교역소가 왼쪽에 있고, 조선소가 오른쪽에 있고, 길드 사무소가 언덕 중턱에 있다.


그런데 냄새가 났다. 모니터에서는 나지 않던 냄새. 생선과 소금과 타르와 사람의 땀이 뒤섞인 냄새. 그리고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 밧줄이 삐걱거리는 소리, 누군가 포르투갈어로 고함치는 소리.


'꿈이야?'


뺨을 때렸다. 아팠다. 게임에서는 아픈 적이 없었다.


방문이 열렸다. 아니, 문이라기보다는 판자였다. 판자를 밀고 들어온 것은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자였다. 가죽 조끼를 입고 있었고, 허리에 밧줄을 감고 있었다.


"선장, 일어나셨습니까."


포르투갈어였다. 그런데 알아들었다. 게임에서 수천 번 읽었던 NPC 대사처럼 — 아니, 그것보다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 이 말을 쓰던 사람처럼.


"……선장?"


"예. 짐 하역이 끝났습니다. 오늘 교역소에 가시겠습니까?"


강현우는 남자의 얼굴을 봤다. 게임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NPC에게는 이름표가 떠야 하는데,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그냥 사람이었다. 눈에 핏줄이 서 있고, 입술이 갈라져 있고, 왼쪽 귀에 작은 흉터가 있는 사람.


"이름이 뭐야?"


남자가 눈을 깜빡였다.


"……페르난두입니다. 선장님."


'페르난두.'


게임에는 없던 이름이었다. 게임의 선원은 이름이 없었다. 숫자였다. 항해술 몇, 전투 몇, 운 몇. 그게 전부였다.


"선원이 몇 명이지?"


"저 포함 다섯입니다."


다섯. 바사의 최대 탑승 인원은 열다섯인데, 다섯. 화물칸도 거의 비어 있을 것이다. 대포는 당연히 없다.


강현우는 — 아니, 이 몸의 주인이 누구였든 — 바사 1척에 선원 다섯으로 리스본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게임이라면 여기서 교역소에 가서 포르투갈 와인을 사고, 세비야까지 연안 항해를 해서 팔면 된다. 초보 교역 루트.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강현우는 창밖을 다시 봤다. 바다가 보였다. 테주 강 하구 너머로 대서양이 펼쳐져 있었다. 햇빛이 수면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게임에서는 바다가 무서운 적이 없었다. 클릭하면 배가 움직이고, 폭풍이 와도 식량만 충분하면 버틸 수 있었다. 해적이 와도 대포 몇 방이면 끝이었다.


지금은 대포가 없다.


지금은 클릭이 없다.


지금은 — 죽으면 끝이다.


"선장님?"


페르난두가 불렀다. 강현우는 고개를 돌렸다.


"교역소에 가자."


일단 움직여야 했다. 게임이든 현실이든, 항구에 멈춰 있으면 돈이 줄어든다. 정박비가 나간다. 식량이 줄어든다. 선원의 사기가 떨어진다.


이것만큼은 게임이나 여기나 같았다.


강현우는 좁은 방에서 나왔다. 갑판이었다. 바사의 갑판. 게임에서는 배 위에 서본 적이 없었다. 항상 위에서 내려다봤으니까. 지금은 갑판 위에 서 있었다. 발밑에서 배가 흔들렸다. 파도가 선체를 때릴 때마다 나무가 삐걱거렸다.


작았다. 이 배는 정말 작았다.


게임에서 바사는 초보용 배였다. 빨리 벗어나야 하는 배. 돈을 모아서 카락이나 캐러벨로 갈아타야 하는 배. 바사에 애착을 가지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배가 자기의 전부였다.


갑판에 선원 네 명이 있었다. 페르난두를 포함해 다섯. 전부 강현우를 보고 있었다. 눈빛이 달랐다. 게임의 선원은 눈빛이 없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눈빛이 있었다. 불안과 기대가 섞인 눈빛.


'이 사람들이 나를 선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강현우는 부두로 내려섰다. 리스본의 땅을 밟았다. 돌바닥이었다. 게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것 — 돌의 울퉁불퉁함이 발바닥에 전해졌다.


교역소까지의 길을 알고 있었다. 항구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골목을 지나면 나온다. 수천 번 걸었던 길이다. 마우스로.


지금은 걸어야 했다. 두 발로.


교역소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게임에서는 줄이 없었다. 클릭하면 바로 교역 화면이 떴다. 여기서는 기다려야 했다.


줄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강현우는 생각했다.


'포르투갈 와인. 세비야까지 연안 항해. 이틀이면 간다. 세비야에서 와인을 팔고, 올리브유를 사서 돌아온다. 왕복 나흘. 이익률 약 40퍼센트.'


머릿속에서 교역 루트가 자동으로 돌아갔다. 게임에서 수만 번 반복했던 계산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가 걸렸다.


'지금 돈이 얼마나 있지?'


게임이라면 화면 구석에 소지금이 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뜨지 않았다. 주머니를 뒤졌다. 가죽 주머니가 나왔다. 열어보니 동전이 몇 개 들어 있었다.


세어봤다. 에스쿠도 은화 열두 닢.


'……이게 전부야?'


포르투갈 와인 한 상자가 은화 스무 닢이었다. 한 상자도 못 산다.


강현우는 가죽 주머니를 다시 닫았다. 줄에서 빠져나왔다.


'일단 길드부터 가자.'


상인 길드. 게임에서 처음 직업을 받는 곳. 초보 의뢰를 받을 수 있다. 의뢰를 완수하면 보수가 나온다. 보수로 교역 자본을 만든다.


길드 사무소는 언덕 중턱에 있었다. 올라가는 길이 가팔랐다. 게임에서는 클릭 한 번이면 순간이동이었는데, 여기서는 숨이 찼다. 이 몸의 체력이 형편없었다.


길드 사무소 문을 열었다. 안에는 나무 카운터가 있었고, 카운터 뒤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안경을 쓰고 있었다. 15세기에 안경이라니 — 아, 게임이니까. 이 세계니까.


"상인 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자가 말했다. 게임에서 수천 번 들었던 대사였다. 그런데 목소리가 있었다. 낮고 또렷한 목소리. 게임에서는 텍스트였던 것이 여기서는 소리였다.


"의뢰를 받고 싶습니다."


"등록증을 보여주세요."


'등록증?'


게임에서는 그런 거 없었다. 캐릭터를 만들면  등록되어 있었다. 강현우는 주머니를 다시 뒤졌다. 양피지 한 장이 나왔다. 펼쳐보니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마르쿠 다 실바.


이 몸의 이름이었다.


"마르쿠 다 실바. 상인 견습. 등록일……"


여자가 양피지를 읽었다. 강현우는 그 이름을 머릿속에 새겼다.


마르쿠. 이제부터 이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


"견습 등급에서 받을 수 있는 의뢰는 세 건입니다."


여자가 양피지 세 장을 카운터 위에 펼쳤다.


첫 번째 — 리스본 시내 식료품 배달. 보수 은화 세 닢.

두 번째 — 파루까지 소금 운송. 보수 은화 열 닢.

세 번째 — 세우타까지 무기 운송. 보수 은화 서른 닢.


강현우의 눈이 세 번째에 멈췄다. 세우타. 북아프리카. 게임에서는 초보가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었다. 해적이 우글거렸다. 대포 없는 바사로 가면 100퍼센트 죽는다.


그런데 보수가 은화 서른 닢이었다. 와인 한 상자 반을 살 수 있는 돈.


'미친 짓이지.'


강현우는 두 번째 의뢰를 가리켰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파루. 리스본에서 남쪽으로 연안을 따라 내려가면 이틀. 해적 출몰 확률 낮음. 바사로도 갈 수 있다. 은화 열 닢이면 적지만, 죽지 않는다.


게임에서는 세우타를 골랐을 것이다. 죽어도 부활하니까. 여기서는 파루를 골랐다. 죽으면 끝이니까.


이것이 게임과 현실의 차이였다.


여자가 양피지에 도장을 찍었다.


"소금은 항구 창고에서 수령하세요. 기한은 열흘입니다."


강현우는 — 마르쿠는 — 양피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길드 사무소를 나왔다. 언덕에서 항구가 내려다보였다. 바사가 보였다. 작고 초라한 배. 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야 한다.


바람이 불었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 짠내가 났다.


게임에서는 바람에 방향이 있었다. 북풍, 남풍, 동풍, 서풍. 숫자로 표시됐다. 지금 이 바람은 숫자가 아니었다.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었다. 머리카락을 흩뜨리는 바람이었다.


강현우는 그 바람 속에 서서 생각했다.


'나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교역 루트. 발견물 위치. 스킬 조합. 해전 전술. 각 도시의 특산품과 시세 변동 패턴. NPC 퀘스트의 조건과 보상. 숨겨진 던전의 입구. 전설 속 보물의 좌표.


전부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모른다.'


모니터 너머에서는 몰랐던 것. 바다의 냄새. 밧줄의 감촉. 파도의 무게. 선원의 눈빛. 그리고 — 죽음의 무게.


마르쿠는 언덕을 내려갔다. 항구를 향해. 바사를 향해.


첫 항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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